마음은 내면화된 ‘움직임’이다.

몸은 어디서 왔고, 몸은 무엇이며, 몸은 어디로 가는가?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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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적으로 육체일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 니체

대폭발(Big Bang)로 시작해, 우주, 세포, 몸, 유전체까지 이야기했다. 몸, 마음, 움직임이 무엇인지를 다룬다는 것은 꽤 복잡하지만 알게 될수록 흥미진진해진다. 복잡하고 어려운 듯 보여도 결국 ‘모두가 하나’라는 것이다. 이 결론은 우리가 100년 쓸 몸 만들기를 할 때 꽤 중요한 개념이 된다. 특히 몸의 질병 예방과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몸과 마음을 분리해 생각하면 질병 해결책이 복잡해진다. 반면 하나라고 생각하면 해결책은 질병 예방은 단순해진다. 왜냐하면 19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생리학자 클라우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의 말처럼 “질병치료의 처음이자 끝은 본래의 몸속 환경을 찾아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몸속 환경 이론은 후에 ‘항상성(Homeostasis)’으로 정립되어 모든 생리현상을 설명하는 생리학의 기초가 된다. 잠시 몸, 마음, 질병을 다루는 관점에 대해 살펴보자.

몸과 마음은 하나인가?
고대부터 인간의 몸에 대한 접근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한 이원설(二元說). 몸과 영(靈) 그리고 혼(魂)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삼원설(三元說). 플라톤은 몸과 영혼은 분리된 것이라는 이원론적 입장을 고수했으며, 몸은 영혼을 방해하는 감옥으로 생각했다. 근대 철학의 창시자 데카르트 또한 이원설에 입각해 몸은 운동하는 연장이고, 인간은 사유하는 마음이라며 몸을 기계로 인식했다.

반면, 19세기 철학자 니체는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음에도 몸과 마음은 하나라고 생각했다. 기독교적 신체관이나 플라톤의 이원론적 입장을 거부했다. 몸은 모든 존재 영역에서 상승과 소멸, 자기 극복의 여정이 작용하며 몸이 이성의 도구가 아니라 이성이 몸의 도구이며, 삶의 생성적 주체는 자아가 아니라 몸이라고 생각했다.

몸의 질병에 대한 접근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어떤 현상의 원인을 좀 더 세부적 요인에서 찾는 환원론(Reductionism)으로 기계론적 자연관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다양한 요인이 한데 어우러져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 전체적인 것을 보면서 원인을 파악하는 전체론(Holism)으로 목적론적 자연관에 해당한다.

시계를 예로 들면 ‘목적론적 자연관’과 ‘기계론적 자연관’의 차이점이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아리스토텔리스에게 있어 시계란 인간에게 시간을 알려주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다. 반면 갈릴레이는 이런 목적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시계가 어떤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기에 시침과 분침이 작동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갈릴레이는 시계의 기계론적 필연성에만 관심을 촉발시켰으며, 동시에 1,50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왔던 과학•기술에 대한 동아시아의 헤게모니를 붕괴시켜버렸다. ‘기계론적 자연관’으로 무장한 서양의 근대과학과 기술은 지금까지는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서양의 과학문명은 스스로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지구를 완전히 파괴할 정도의 핵전쟁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나아가 자연환경을 회복 불가능한 정도로 파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 중에서

흉선외분화 T세포를 발견하고, 백혈구 자율신경의 지배구조를 밝혔으며, 위궤양의 원인이 위산이라는 정설을 뒤집은 세계적인 면역학자 아보 도오루는 그의 저서 《만병의 원인은 스트레스다》에서 “너무 분석적이라 병을 잘 못 고치는 현대의학”이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이런 말이 있다. “영양학자는 영양소는 알지만 음식은 잘 모른다. 의사는 병은 알지만 건강은 잘 모른다.” 이는 환원론의 문제점을 고백한 것이기도 하다.

환원론에 관해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요즘, 전체론과의 상호 보완을 통해 통합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어쩌면 몸과 마음이 분리된 것이 아닌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은 않을까? 지루해도 지적 대화를 위해 넓고 얕은 지식을 얻는다고 생각하자. 이제 나머지 마음과 움직임에 대해 알아보자.

움직임이 진화적으로 오랫동안 내면화 된 것이 마음이다. '마음은 내면화된 움직임'이다.
움직임이 진화적으로 오랫동안 내면화 된 것이 마음이다. ‘마음은 내면화된 움직임’이다.

마음(Mind)이란 무엇일까?
마음은 과학 용어로 ‘의식(Consciousness)’이다. 의식의 사전적 정의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는 작용”이다. 의식은 감정, 느낌, 상징, 언어, 움직임이 포함되어 있다. 이 의식은 어디서 출현한 것일까? 앞서 세포의 근원적 움직임에 대해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꿈꾸는 기계의 진화》의 저자이자 뇌과학 연구학자인 로돌포 R. 이나스에 따르면 “의식의 출현은 모든 세포가 지닌 근원적 움직임이 진화 과정에서 중추신경 시스템의 전기적 작용에 의해, 내부적으로 대뇌와 연계되면서 내면화된 것”이라고 한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마음(사고)은 내면화된 움직임이다.

다시 말해 움직임이 진화적으로 오랫동안 내면화된 것이 마음이며 “자기 자각을 포함해서 감각운동 이미지가 발생하는 전역적(Global)인 뇌 기능 상태”인 것이다. 여기서 감각운동 이미지는 움직임을 일으키는 하나의 구별되는 기능 상태를 만들어내는데 관련되는 모든 감각 입력의 결합을 뜻한다.

이나스는 마음은 뇌 안에서 생겨났으며, 이 둘은 나눌 수 없다고 했다. 마음은 몸 안에 있다. 마음은 몸의 어디에서 출현하는가? ‘뇌(Brain)’다. 뇌는 신경세포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포는 근원적 움직임이 있다. 세포는 몸이다. 몸은 마음이다. 몸은 움직임이며 이는 곧 당신이자 당신의 삶이다. 몸은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촉각을 제외하면 시각과 청각, 후각, 미각 기관은 모두 머리에 집중되어 있다. 모든 감각 기관은 마치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문처럼 각종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주름이 가득한 대뇌로 보내 처리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의 모습을 온전히 그려볼 수 있다. 우리는 개미처럼 하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이 작은 두개골 안에는 거대한 우주가 담겨 있다. 바로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우주 말이다.

– 샤오춘레이의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중에서

이렇듯 몸과 마음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의식의 반대 개념인 ‘무의식(Unconscious)’에 대해 얘기해보자. “무의식은 사고 과정, 기억, 동기 따위 없이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정신적 작용”이라고 신경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가 말했다. 그런데 무의식은 의식적 움직임을 통한 몸의 경험을 전제로 한 것이다. 당신이 운전을 배울 때 의식적 학습 노력이 필요하지만, 익숙해지면 애써 기억해내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된다.

결국 우리가 의식적으로 지각하고 있는 것은 순수하게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신체 경험을 전제하고 있는 것, 어쩌면 신체 경험을 추상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메를로-퐁티가 “지각된 광경은 순수 존재를 갖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 중에서

이를 움직임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몸은 무의식적 움직임 즉,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화된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경계 입장에서 보면 무의식적 움직임은 뇌의 대뇌기저핵과 뇌간 및 자율신경계와 관련이 있고, 의식적 움직임은 뇌의 대뇌피질 신경세포들의 다중적인 시냅스와 관련이 있다. 생각 역시 이 시냅스 활동의 하나이다.

생각이란 무엇일까?
그렇다면 생각(Thinking, 사고)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머리 속으로 떠올리는 생각 즉, 뇌로 하는 생각은 언어로 되어 있다. 의식은 언어를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의식은 언어로 된 생각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나스가 “마음(의식=사고=생각)은 내면화된 움직임이다.”라고 한 말을 다시 생각해보라.

뇌의 상당 부분이 언어보다는 움직임에 사용된다. 언어는 움직임의 드넓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 뇌신경의학자 올리버 삭스 <마음의 눈>, 깨어남>의 저자

결국 ‘마음=의식=생각=움직임’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그리고 걷기와 같은 몸의 움직임들이 왜 뇌를 자극해서 좋은 생각 즉, 아이디어(Idea)를 떠오르게 하는지, 왜 몸에 적당한 스트레스를 주는 운동이 뇌 건강에도 좋고, 성적이 향상되는지 이해가 된다. 생각과 움직임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만 더 알아보자.

"몸의 움직임이 생각이 된다."고 이야기한 20세기 현대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
“몸의 움직임이 생각이 된다.”고 이야기한 20세기 현대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

몸의 움직임이 생각이 된다.

《생각의 탄생》저자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은 “생각하고 창조하기 위해 근육의 움직임과 긴장, 촉감 등이 불려 나오는 순간이 바로 ‘몸의 상상력(Body Imagination)’이 작동하는 때”라고 이야기한다. “이때가 사고하는 것은 느끼는 것이고, 느끼는 것은 사고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자각하는 순간”이라고 덧붙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기부여 강연가 토니 로빈스는 “몸짓(Motion)이 감정(Emotion)을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20세기 가장 유명한 현대 무용가인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은 “몸의 움직임이 생각이 된다.”고 말했다. 앞서 말한 무의식적 움직임 즉, 체계화되고 자동화된 움직임을 통한 생각의 출현을 의미한다. 안무가 엘리엇 펠드(Eliot Feld)는 “몸으로 안무를 해야지, 마음(의식 또는 생각)으로 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몸을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정보처리의 양은 너무 엄청나서 믿기 어려울 정도기 때문이다.

수백만 개의 수축성 물질에, 수백만 개의 줄이 매달려서 자유롭게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는 650여 개의 근육과 200여 개의 수백 개의 관절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 움직임이다. 이처럼 우리의 신경계가 몸의 움직임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것은 기술과 정보 처리의 놀라운 능력 때문이다. 이는 무의식 중에 이루어진다. 움직임 조절에 관련된 뇌의 기능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을 하는 뇌의 능력보다 더 놀랍고 뛰어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나는 전적으로 육체일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영혼은 육체에 있는 어떤 것의 이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생각하고 느끼는 일은 늘 몸 안에서, 몸과 더불어, 몸을 통해 일어난다.

– <인생학교: 지적으로 운동하는 법> 중에서

생각 혹은 아이디어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철학가, 발명가 혹은 세상을 바꾸는 혁신가 등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좋은 생각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대부분의 경우가 ‘몸을 움직이고 있을 때’라는 것.

이를테면 산책을 하고 있거나, 목욕이나 샤워, 운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떠오른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낚아챘다고 말한다. 그 상황에서 몸은 항상 움직이고 있다. 움직임은 곧 생각이다. 생각은 몸의 움직임 안에서, 몸의 움직임과 더불어, 몸의 움직임을 통해 일어난다. 왜 운동이 창의적인 사람으로 만드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참고: <몸의 역사: 의학은 몸을 어떻게 바라보았나> 강신익 지음, 살림(2007)
참고: <철학 VS 철학: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 강신주 지음, 그린비(2010)
참고: <꿈꾸는 기계의 진화> 로돌포 R. 이나스 지음, 김미선 옮김, 북센스(2007)
참고: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리셀 루트번스타인 지음, 박종호 옮김, 에코의서재(2007)
참고: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샤오춘레이, 유소영 옮김, 푸른숲(2006)
참고: <몸, 욕망을 말하다> 키머러 라모스 지음, 홍선영 옮김, 생각의날개(2009)
참고: <움직임을 위한 가이드> 토드 하그로브 지음, 김지용 외 2명 옮김, 대성의학사(2015)
참고: <뇌, 생각의 출현> 박문호 지음, 휴머니스트(2008)
참고: <인생학교: 지적으로 운동하는 법> 데이먼 영 지음, 구미화 옮김, 프런티어(2016)
참고: <미라클 모닝> 할 엘로드 지음, 김현수 옮김, 한빛비즈(2016)
참고: <네이버 사전> ‘의식’, <위키백과> ‘무의식’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개인/임상/재활 운동사, NSCA-CPT, 스포츠영양코치, 생활스포츠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