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힘] 봉준호의 ‘1인치 장벽’ and ‘1인치 게임’

인생은 1인치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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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뉴스를 덮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 관련 업계 종사자들, 무엇보다 현장에서 헌신을 다하고 있을 의료진들, 잘 견디고 있는 확진자들과 더불어 온 국민에게 힘이 되는 소식이 어느 로컬 영화제에서 들려왔다.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 이어 아카데미 92년 역사를 새로 쓴 것은 물론, 한국 역사상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하나도 아니고 무려 4개나 거머쥔 영화 <기생충, Parasite>(비영어권 영화가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건 최초이며, 그 외에도 해외서만 174개의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 작품을 탄생시킨 각본가이자 감독 봉준호. 8개월 전 <기생충>을 보고 왓챠에 남겼던 코멘트 중 마지막 부분은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 스텝들에게 기립박수를!~”

이었다. 자막을 통해 전달돼야 하는 외국어 영화가 세계적인 시상식에서 상을 받기는 쉽지 않다. 봉준호 감독은 한국영화 최초로 제77회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뒤 수상소감으로 “1인치 장벽”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자막의 장벽을, 장벽도 아니죠, 1인치 정도 되는 그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Once you overcome the one-inch tall barrier of subtitles, you will be introduced to so many more amazing films).  –  봉준호 감독, 제77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소감  중에서

이후 줄곧 1인치 장벽에 대해 이야기했던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 후 “1인치 장벽은 무너지고 있는 상태였고, 온라인 환경은 이미 모두 연결돼 있으며,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이라는 감격적인 소식과 더불어 떠올랐던 1인치 장벽. 그리고 그 1인치는 단어를 뇌리에 박히게 했던 한 편의 영화가 생각났다. ‘인생은 1인치 게임’이라고 침 튀기며 이야기하는 알 파치노(Al Pacino) 주연의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 미식축구(Football)를 다룬 이 영화의 압권은 플레이오프전 시합을 앞두고 락커룸에서 감독인 알 파치노가 선수들에게 했던 명연설이다.

애니 기븐 선데이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 2000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3분 후에 우리의 프로생활에서 가장 큰 전투가 벌어진다.
모든 게 오늘 결판난다.
우리가 온전한 팀으로 소생하든가, 부서지든가의 기로다.

매 접전마다 1인치씩 밀리면 끝장난다.
우린 지금 지옥에 와 있다. 정말이다.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서 굴욕적으로 패배하던가 아니면
싸워서 광명을 얻어 지옥에서 올라올 수 있다.
한 번에 1인치씩!

 

내가 해 줄 수는 없다. 난 너무 늙었다.
이 젊은 얼굴들을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중년의 시기에 최악의 선택을 했었다고
난… 돈을 다 날렸다. 믿기지 않겠지만.
날 사랑한 사람들도 쫓아내 버렸다.
요즘은 거울 속의 내 얼굴이 보기도 싫다.

나이를 먹게 되면 여러 가지를 잃는다. 그게 인생이야.
하지만 잃기 시작하면서 그 사실을 알게 돼.
‘인생은 1인치의 게임’이란 걸 알게 될 거야.

풋볼도 그래.

 

인생이건 풋볼에서건 오차 범위는 매우 작아서
반 걸음만 늦거나 빨라도 성공할 수 없고
반 초만 늦거나 빨라도 잡을 수 없다.

모든 일에서 몇 인치가 문제야!

경기 중에 생기는 기회마다 매분, 매초마다 그래.
우리는 그 인치를 위해 싸워야 돼!

우리는 그 인치를 위해 우리 몸을 부수기도 하고
남의 몸을 부수기도 한다.

그 인치를 위해 주먹을 움켜쥐어라!
그 인치들을 합치면 승패가 바뀐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생사가 뒤바뀔 것이다!

 

어떤 싸움에서건 죽을 각오가 돼 있는 사람만이 그 인치를 얻는다. 얻는다.

내가 인생을 더 살려고 하는 것은
아직 그 인치를 위해 싸우고 죽을 각오가 돼 있기 때문이다.
그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앞에 놓인 6인치를 내가 억지로 시킬 순 없다!
옆에 있는 동료를 봐라.
그의 눈을 들여다봐.

여러분과 같이 그 인치를 위해 갈 각오가 보일 거다.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보일 것이다.
여러분은 서로를 위해 희생할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게 팀이란 거야.

지금 우리가 팀으로서 희생하지 못한다면
일개 개인으로서 죽어야 돼.

그게 풋볼이다.
그게 전부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봉준호 감독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그 스스로도 ‘대단한 악몽’이라고 했던) 블랙 리스트에 오르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스크린 속 1인치 장벽을 넘기 위해 20년간 묵묵히 자신의 일에 매달려 왔다. 스크린 속 1인치 장벽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은 수많은 1인치 장벽으로 둘려싸여 있다. 지구 곳곳에, 사회 곳곳에, 조직 곳곳에, 가정 곳곳에 오랜 세월 무너지지 않고 쌓여온 1인치 장벽들.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 놓은 1인치 장벽.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것을 ‘적폐’, ‘차별’, ‘빈부격차’, 고쳐야 할 ‘나쁜 습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마디로 축약하면 ‘기생충’일지도 모른다. 이것의 공통점은 어느새 지구를, 사회를, 조직을,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 어제의 1인치를 넘어서지 못하고, 여전히 오늘을 살아간다면 단 1인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과 같다. 1인치 장벽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주먹을 쥘 때 비로소 격차를 줄일 수 있고, 성취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으리라. 오늘도 이글거리는 태양이 떠올랐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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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푸샵글
참고: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자격사항: 개인/임상/재활 운동사, 미국체력관리학회 공인 퍼스널 트레이너(NSCA-CPT), NSCA-스포츠영양코치, 국가공인 생활스포츠지도사2급, 퍼스널 트레이너2급, 웃음치료사2급, 바디테크닉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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