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운동] 어쩌면, 당신 이야기 5 | 온종일 죽음만 생각하다, 우울증

나도 모르게 쌓이는 마음의 상처들

0
96

2013년 즈음에 우울의 늪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런 내 마음 상태는 다시 피로와 근육 통증을 깨웠다. 과수면까지는 아니더라도 정해진 시간보다 2시간은 더 자야 했고, 일어나도 오전 내내 피로에 시달려야 했다. 근육 통증은 더 강하게 여기저기서 발생했다. 물건을 사는 단순한 결정도 어려워졌고, 사는 게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온종일 죽음만 생각하다 | 우울증


우울의 늪에 빠지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 하면, 부정적 생각이 어느 시점부터 눈을 뜨자마자

살아서 뭐해… 의미도 없고,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둥둥 떠다니기 시작한다. 그것도 온종일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효과적인 죽음의 방법들에 대해 떠올리기 시작한다. 죽음이 이 모든 고통을 사라지게 해 줄 테니 어서 실행에 옮기라는 유혹에 시달리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떠오른다. 남은 이들이 황망스럽고 슬프겠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하루 종일 죽음의 사자가 옆에서 내가 자살해, 죽음의 명부에 사인하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며 따라다닌다.

우울증, 마음에 드리운 긴 그림자.
우울증, 마음에 드리운 긴 그림자. [이미지 출처: 구글]

미국에서의 첫 사회생활로 모은 700만 원으로 귀국해 옥탑방에서 헬스 온라인 사업 시작, 신문에 유망 사이트로 소개, 대기업 러브콜, 개인 투자 유치, 투자자의 투자금 회수, 완전 지하 방에서 사이트 리뉴얼, 첫 사업 실패, 재정적 어려움, <남자들의 몸만들기> 건강 코너 베스트셀러 등극과 언론 노출, 나를 중상모략한 동료 직원.

 

100억 프로젝트 진행과 실패, 신뢰를 저버린 파트너가 걸어온 소송, 늘어나는 빚, 보증금까지 까먹고 월세가 밀린 탓에 쫓겨남. 대기업 헬스클럽 오픈 추진, 내 뒤통수를 친 파트너, 두 얼굴의 회장 조카의 배신, 사인까지 한 투자 계약서를 종잇조각으로 만든 후배.

 

개념 없는 사업 파트너로 다시 좌절, 나이 때문에 쉽지 않은 취업, 연애의 실패, 인간쓰레기를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 풍요롭게 살 수 있었던 지난날의 선택을 뿌리친 후회…

2003년 근섬유통 증후군이 발생한 이후 몇 번 있었던 작은 성공보다 더 많은 실패와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10년간 누적돼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마음의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나 꼼짝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탈진(Burn Out)한 것이다. 그래서 낙향을 했다. 금전적으로 버틸 수 없는 상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칼에 손가락을 베이면 피가 난다. 그 상처는 바로 확인 가능하다(17년 전 4~5 바늘 정도 꿰맸는데, 아직도 희미하게 흉터가 남아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 쌓인 내 마음의 상처를 알아채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상처와 마주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의학적 검사는 정상이지만, 통증과 피로로 얼룩진 내 몸이, 내 처치가 오랜 기간 서서히 우울의 늪으로 빠지게 했을 것이다. 

회복할 힘이 소진되다 | 회복력 상실


물론 모든 일이 멀쩡하게 굴러가고 있거나,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람처럼 보여도 우울증은 올 수 있다.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갑자기 우울증이 나타난다. 당장 눈에 띄는 스트레스 원인을 전혀 찾을 수 없는데도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 당사자나 가족은 그런 기분의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아덴만의 영웅 외과의사 이국종은 모든 것을 다 이루고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중증외상센터를 유지하기 위해 그가 겪었던 많은 일이 “이번 생은 완전히 망했어요”라고 할 만큼 좌절케 했다. 결국 그도 우울증을 피할 수 없었다.

삶의 압력과 긴장,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 능력과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강함이 아니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회복력이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강한 체력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을 넘어서는 시련이 닥치면 난감하다. 게다가 자기 능력이 통하지 않는 사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싸우려고만 하면 더 위험해진다. 회복할 힘이 소진되는 줄도 모르고 실패가 점점 쌓이다 보면 실패에 학습된 무기력감이 마음을 지배하게 된다.

그러면 ‘마음의 감기’에 그치지 않고, 마음의 척추가 부러지는 ‘마음의 골절상’을 입게 된다. 감기는 일주일이면 낫는다. 하지만 척추가 부러지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으며, 회복되더라도 꽤 많은 시간과 재활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결국 더 이상 재기는 불가능해진다. 일어서서 다시 한번 도전하려는 전의를 상실해버리고 만다.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서 여전히 불명예를 안고 있다.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서 여전히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이미지 출처: 구글]

결국 우울증으로 자살을 한다. 한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은 서글픈 일이다(2018년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또 안았다). 왜 그럴까? 스스로가 회복 시스템을 마련해 놓지 않아서다. 사회적으로는 선택지가 많기 때문이다. 회복하고 회생할 수 있는 길이 많아야 한다. 내가 넘어져도 사회가 받아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완충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또한 사회적 분위기도 너그러워야 하며, 복지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야 한다.  

자살을 ‘자유 죽음(Freitod)’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유롭게 삶을 거두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는 핵심에 닿지 않는 말이다. 질병 때문에 이미 자유로운 의사 결정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
암 환자의 자살률은 보통 사람들보다 1.8배 높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의 자살률만큼 높지는 않다. 우울증 환자의 자살률은 보통 사람들보다 20배나 높다. 이 수치는 영원히 세상을 등지겠다는 그런 소망이 대개의 경우 꼭 객관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 보르빈 반델로(Borwin Bandelow)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마음의 병 23가지> 중에서

수직적이고 획일적 사회, 성적 지상주의,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 회생할 기회가 부족한 사회에서 자살은 줄어들지 않는다. 안전불감증, 위험의 외주화, 생명 경시, 노동자를 쥐어짜는 분위기는 사고사와 과로사를 높일 뿐이다. 2020년 10월까지 택배기사는 무려 13명이나 사망했다.

이들은 사고나 기저질환으로 사망한 게 아니다. 일이 너무 많아서다. 호소해도 바뀌지 않으니 결국 몸이 견디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스스로 생명 유지 시스템을 셧다운 시켜버린 것이다. 사망 직전의 감정 상태는 한없이 우울하고 무기력했을 것이다. 참담하고 서글픈 일이다.

■ <나는 ‘살기 위해’ 운동한다> 다음 연재 글
[심플 운동] 어쩌면 당신 이야기 4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심플 운동] 나는 '살기 위해' 운동한다
[심플 운동] #살아있다 하여 비울 것! 그리고 채울 것!
[심플 운동] 살아있음의 무게를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
[심플 운동] 어쩌면 당신 이야기 1 | 피로 때문에 좀비가 되다
[심플 운동] 어쩌면 당신 이야기 2 | 통증이 온몸을 공격하다
[운동 안내서] 운동을 안내하다
[운동 안내서] 삶을 변화시키는 힘! 운동이란 무엇인가?
[완벽한 몸만들기] 17년 만에 다시 쓰는 몸만들기와 운동 이야기
[완벽한 몸만들기] 몸만들기와 모든 운동 시작 전 꼭 알아야 할 사항들

참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마음의 병 23가지: 숨 막히는 영혼의 그림자를 상쾌하게 걷어내는 법> 보르빈 반델로 지음 | 김태희 옮김 | 교양인(2011)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자격사항: 개인/임상/재활 운동사, 미국체력관리학회 공인 퍼스널 트레이너(NSCA-CPT), NSCA-스포츠영양코치, 국가공인 생활스포츠지도사2급, 퍼스널 트레이너2급, 웃음치료사2급, 바디테크닉 수료
·사이트&SNS: http://푸샵.com페이스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