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운동] 어쩌면 당신 이야기 4 | 나는 우울증에 걸렸을까?

나는 우울증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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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일들이 두개골 속 대뇌에서부터 척추신경망을 타고 전신의 세포 말단까지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극도의 우울함을 넘어 마치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고, 구토가 올라왔다. 자주 화장실에 들락거렸으며 멍하니 딴생각하며 걷다가 자꾸 부딪치거나 발을 헛디뎠다.

– 외과의사 이국종, “이국종의 고백: 나는 항상 우울하다, 그래도 그냥 버틴다.”
중앙일보, 2019.10.28

2014년에 본 영화 중에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 2011>가 있다(일본어 츠레ツレ는 동반자, 영화에서는 남편을 뜻한다). 일본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와서…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난 우울증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처럼 우울증과 트라우마를 소재로 한 영화는 많다. 그런데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처럼 ‘우울증’을 제목에 넣고, 치유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이 영화를 보고 왓챠에 남겼던 코멘트.

걸려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우울증. 삶과 영혼이 파괴되어가는 걸 지켜만 봐야 하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고통을 함께 나눌 이가 있다는 건 행운일지도… 한 번은 꼭 보시라!

 

– 6년 전 왓챠에 남긴 코멘트

‘우울증’ 제목이 붙은 영화를 보다


영화는 일러스트 만화가 ‘호소카와 텐텐(細川 貂貂)’의 자전적 실화를 바탕으로 쓴 에세이 만화가 원작이다. 평범한 외국계 소프트웨어 회사원 ‘미키오(사카이 마사토 분)’와 겨우 연재를 지속하는 만화가 ‘하루코(미야자키 아오이)’ 부부.

꼼꼼한 성격에 성실함과 책임감 빼면 시체인 남편 미키오는 일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다. 알 수 없는 무력감과 통증이 시작되고 점점 좀비처럼 돼가다 결국 ‘우울증’ 판정을 받는다.  

우울증에 걸리면, 이불밖으로 나오는 것 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우울증에 걸리면, 이불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미지 출처: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 구글]

‘마음의 감기’에 걸린 남편을 위해 하루코는 서두르지 않고 남편을 도우며, 남편을 대신해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중간중간 나오는 하루코의 일러스트와 함께 우울증의 증상과 치료의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며 아내 또한 성장해 간다는 게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의 줄거리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거나 우울함을 자주 느낀다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과 함께 보길 바란다.

우리는 우울감을 가끔 느낀다. 월요일이 기다리는 일요일 저녁이 되면 기분이 다운될 수 있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바람이 불면 우울해질 수 있다. 소통이 잘 안 되는 직장 상사나 동료를 마주할 때 기운이 빠지고 우울해질 수 있다. 가끔 자신감에 찬 하루를 시작하고 끝맺듯이, 가끔 우울감으로 하루를 시작해 끝맺을 수 있다. 이는 지극히 정상 범위에 있다. 우울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우울감의 강도를 점점 높이는 상황, 즉 스트레스 상황이 해결되지 않고 지속하면 우울감을 넘어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1년에 한두번 걸릴 수 있는 감기는 보통 일주일이면 낫는다. 이로 인해 우울감을 느낄 수 있다. 영장류가 바이러스 따위에 진 비루한 체력을 탓하며… 그런데 인류가 처음 겪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10개월째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코로나 블루’. 코로나19로 인한 여러 상황 때문에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해마다 좋아지진 않더라도 생계를 유지해주었던 매출이 곤두박질치고, 부채가 점점 늘어나 결국 폐업을 선택한 사람에게서 우울증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몸과 마음에 대해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몸이 아프면 우울증이 올 수 있고,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몸이 아플 수 있다는 것이다. 우울증으로 인해 근섬유통 증후군이나 만성피로 증후군이 올 수 있고, 질환 때문에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는 뜻이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울증에 걸렸을까?


우여곡절 끝에 류마티스내과에서 근섬유통 증후군 진단을 받았을 때, 처방받은 약은 항우울제였다. 관련 연구자료를 보면 우울증을 앓다 보면 근섬유통이 올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우울증 자체도 통증과 피로, 불면증 등을 동반한다.

그러나 내 경우 항우울제는 효과가 없었다. 통증, 피로 증상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3년 극심한 피로와 14시간의 과수면증, 온몸을 공격하는 근육통증이 시작될 당시를 기준으로 그전에도 우울감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우울증에 걸렸을까?
나는 우울증에 걸렸을까? [이미지 출처: 구글]

증상들이 나타난 후에도 특별히 우울증이라고 할만한 징후는 없었다. 우울증 상태를 표현하는 ‘하루 종일 뉴스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상황’(뉴스는 온통 부정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희망적인 내용은 거의 없다), ‘온종일 부정적이고 불안한 생각만 가득해 삶에 대한 염증을 느낌’, 심한 경우 ‘온종일 죽음을 떠올린다’거나 

자살을 실행하겠다는 아주 구체적인 계획까지 준비하는 상황

같은 증상은 없었다. 대신 우울감은 종종 있었던 것 같다. 근섬유통 증후군이라는 (당시엔) 희귀성 질환에 대한 불안감, 결혼 문제, 책이 얼마나 팔릴까 하는 생각, 불안한 미래 등등, 그런 생각으로 인한 우울감 말이다.

어쨌든 초기 증상들이 나타난 이후 몇 년간 우울감이 가끔 있었지만, 우울증이라고 판단할 정도의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2003년 내 몸에 나타는 증상들은 십 년 후 겪게 될 우울증의 씨앗이었다는 걸, 우울증을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우울증에 걸렸을까?

다음 증상 중 다섯 가지 이상을 2주 동안 거의 매일 겪었다면 주요우울장애(MDD, Major Depressive Disorder)일 가능성이 있다(하지만 정확한 진단은 건강 전문가만이 내릴 수 있다). 다섯 가지 이하에 해당한다면 경미한 우울을 느꼈을 것이다.

*
슬프거나 공허하거나 항상 짜능이 난 상태 등 우울한 기분.
* 모든 또는 거의 모든 활동에 흥미나 즐거움 감소.
* 상당한(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체중의 감소 또는 증가, 식욕의 감퇴 또는 상승.
* 불면증 또는 수면욕구 증가.
*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로 초조해하거나 느려진 행동.
* 피로 혹은 기력 상실.
*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 과도하거나 부적절한 죄의식.
* 생각하거나 집중하거나 결정 내리기가 어려움.
* 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생각이 반복됨.

– 앨릭스 코브(Alex Korb)의 <우울할 땐 뇌과학> 중에서

2003년을 기준으로 나는 위 테스트에서 2가지 정도 해당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2가지 정도만으로도 좀비가 되기엔 충분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저자 백세희는 기분부전증(Dysthymia)를 겪으면서 12주간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기분부전장애는 우울증의 경증 혹은 전단계로 보기도 한다. ‘만성적 슬픔’이라 불리는데, 우울증과는 다르다고 한다(질환을 너무 세분화해서 해결하지 못하는 현대의학의 문제는 여기서도 드러난다).

 

책을 읽어보니 우울증이라고 해도 경증인 이유라 생각되는 이유는, 스스로 죽음을 떠올린 대목이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3번 나온다. 다만 홍승희 작가의 자살 일기 중 ‘자유 죽음’을 읽고 쓴 내용에서다. 어쨌든 책 제목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다. 우울증의 아이러니다. 마음의 또 다른 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라는 얘기다.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는 분량 때문에 2부로 나눕니다.

■ <나는 ‘살기 위해’ 운동한다> 다음 연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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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국종의 고백 “나는 항상 우울하다, 그래도 그냥 버틴다.”> 중앙일보, 2019.10.28
참고: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 2011> 네이버 영화
참고: <우울할 땐 뇌 과학: 최신 뇌과학과 신경생물학은 우울증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앨릭스 코브 지음 | 정지인 옮김 | 심심(2018) | 전자책
참고: <죽고 싶지만 떡복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지음 | 흔(2018) | 전자책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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