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운동] 어쩌면 당신 이야기 1 | 피로 때문에 좀비가 되다

31년 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극심한 피로를 겪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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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는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나의 의지를 아주 초라하게 만들어버린다.
– 2013.11.19

2003년 여름 어느 날. 눈을 떴다.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끈 기억조차 없는 알람. 분명 맞춰놓고 잤는데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평상시대로 밤 10시쯤 잠들었으니 무려 14시간을 잔 것이다. 한 번도 깨지 않고 말이다. 몸이 개운해야 정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동시에, 마치 천근만근의 무게가 짓누르는 것처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극심한 피로가 나를 엄습하고 있었다. 

극심한 피로 | 이런 상태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31년 동안 이런 피로는 한 번도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가장 싫어했던 시험 기간 이틀 밤샘에도 이 정도 피로감을 선사하진 않았다. 힘든 해병대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제대할 때까지도. 허리를 필 세 없이 딩겨를 퍼담는 알바를 2달간 했을 때도. 첫 사회생활을 위해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꼬박 석 달 동안 6시간만 자고, 주말도 없이 일했을 때도. 푸샵.com 사이트를 만들기 위해 주말도 없이 하루 16시간을 일했던 6개월 동안에도.

게다가 14시간을 자다니… 이 또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말 아닌 평일에 늦잠을 자본 적도 없었다. 오후에도 피로는 가실 줄 몰랐다. <남자들의 몸만들기> 원고를 단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멍하니 TV만 봤다. 저녁때쯤 되자 겨우 나를 가둔 피로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그렇다고 원고를 쓸 정도의 몸 상태는 아니었다. 그렇게 또 멍하니 앉아서 TV만 봤다. 잘 시간이 돼서 10시쯤 불을 끄고 알람을 확인하고 잠들었다.

내일은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고 새벽 6시에 일어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다음날도 전날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14시간을 자고 12시쯤 일어났다(어떻게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말인가). 몸은 어찌할 수 없을 정도의 피로에 절어 있었다. 오후 내내 비몽사몽으로 보내고 나서야 저녁쯤 겨우 피로에서 벗어나 원고 작업을 하고 다시 10시쯤 불을 끄고 시계 알람을 확인하고 잠들었다.

“내일은 6시에 번쩍 눈을 뜨리라… 상쾌한 몸으로 원고 작업을 하리라… ”

는 생각은 어김없이 빗나갔다. 일주일, 보름, 한 달 동안 매일 극심한 피로 증상과 14시간을 자는 일이 반복되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대학생이거나 직장인이었다면 휴학계를 내거나, 퇴사를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일상이 아니었다. 초점 없는 눈과 삶의 아무런 의미와 목적도 없이 나의 통제권을 벗어나 어슬렁거리는 몸에 갇혀 돌아다니는 좀비가 된 기분이었다. 함께 살던 반려견 란이는 나 때문에 아침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 전에 미리 다음 날 아침을 준비해두었다. 나는 피로 때문에 좀비가 되었다. 그런 몸 상태가 앞으로 몇 년이 더 지속하리라는 걸 상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잘 생긴 좀비가 된다면 다시 생각해보겠지만, 극심한 피로는 다시 경험해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잘 생긴 좀비가 된다면 다시 생각해보겠지만, 극심한 피로는 다시 경험해보고 싶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웜바디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원고를 출판사에 넘겨야 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한 달째 단 한 페이지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도대체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병원을 갔다. 한 달만에 겨우 병원을 방문한 것도 피로가 너무 극심히 오후에는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좀비는 밤에만 움직이지 않던가. 물론 요즘 좀비는 낮에도 움직이긴 하더라). 장을 보는 것, 반려견 란이를 산책시키는 일도 저녁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양방과 한방 모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가정의학과, 내과, 한의원, 한방병원에서 의학적 검사를 통해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이것이 의학 교과서에 실린 병이라면 병명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해결책은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의학적 검사는 모두 정상이었다. 그리고 양의사나 한의사 누구든 내 증상에 대해 정확히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검사상 정상이니 약을 처방해주는 것도 곤란했을 것이다. 한의원에서 지어준 한약을 먹어 보기도 했지만 차도는 없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증상과 온종일 극심한 피로 증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아무런 이상 징후 없이 갑자기 시작된 극심한 피로 증세를 겪기 전까지, 나는 매우 이상적인 생활패턴을 이어가고 있었다. 비록 책을 쓰기 위해 1년간 살을 찌운 기간이 있었고, 체중은 거의 0.1톤에 육박했었다. 의학적으로 비만(지방간 중증, 고콜레스테롤증, 고지혈증, 고혈압) 진단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미 운동과 식사조절로 예전의 건강하고 튼튼한 몸으로 돌아와 있었다.

FM이라고 할 정도로 정해진 시간에 기상과 취침을 했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건강한 식단으로 식사를 했으며,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다만 ‘지르텍’이라는 알레르기 약을 일주일에 한 알 복용하고 있는 것 외에는 건강상의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지르텍의 부작용으로 피로 증세가 생긴 게 아닐까 의심해본 적이 있긴 하다). 비만 관련 약 처방을 거부하고 운동과 건강식단으로 살을 빼고 몸을 만들고 나서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과연 극심한 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행히 두 달 만에 극심한 피로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고 14시간을 내리 자는 문제는 해결됐다. 좀비에서 해방된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규칙적인 생활과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라고 끝맺을 수 있었다면,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수년 전부터 내 경험을 글로 남기고자 마음먹었지만 몸과 상황이 허락지 않았다. 하지만 더는 미룰 수도 없고, 무엇보다 나를 위해서 글을 써야 했다.

어쨌든 늘 일어나던 시간이 아니지만 아침엔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피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래도 일어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에, 피로도 줄어들 거란 희망을 품고 정상적인 패턴의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엔 피로가 아닌 다른 증상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만성피로증후군은 1988년에 처음으로 미국의 CDC에서 제안되었고, 그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1990년, 영국에서는 1991년 공표를 하였다가 1994년에 이르러서 국제적인 협력그룹에 의해서 지금의 정의가 내려졌다. 만성피로증후군은 임상적으로 진단되는 질환이 없는 상태에서 적어도 6개월 이상 지속되는 피로가 있으면서 관련되는 8가지의 특징적 증상 중에 4가지 이상이 충족되어질 때 진단되며, 아직까지 특이적인 실험실적 진단 방법이나 인자는 없는 실정이다.

– 곽경구, 조정효, 손창규의 <만성피로증후군의 한의학적 병태분석> 중에서

만성피로를 유발하는 흔한 원인 질환들
만성피로를 유발하는 흔한 원인 질환들 [이미지 출처: 구글]

피로 – 2013. 11. 19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피로. 그것도 무려 만성피로. 더불어 목 주위 근육들은 한층 더 뻣뻣해진다. 한번 시작되면 며칠씩 나를 좀비처럼 만들어 버리는 피로. 좀비가 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느릿느릿 하루 종일 멍하게 걷거나 서있는 좀비처럼 나의 하루도 그렇게 멍하게 지나가버린다.

 

생각도 잘 떠오르질 않는다. 초점도 흐릿해져 버린다. 내가 하는 것이라곤 그저 TV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쳐다보는 것이다. 모니터에 점령당해버린 것 같다. 피로는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나의 의지를 아주 초라하게 만들어버린다. 의지가 있었나 할 정도로… 피로에게 지는 것인가? 나에게 지는 것인가?

 

(…)

만성피로와 근육통증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을까? 아마 한 번에 해결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무려 10년이다. 10년을 함께해왔던 것을 한 번에 정리하긴 힘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친해져야 한다. 달래야 한다. 그리고 또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호르몬 균형이 맞는지 검사를 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부디 극복하길 바란다. 피로가 찾아온 날 좀비가 되지 않길 기대해본다.


– 푸샵 이종구의 글쓰기 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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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특성 이미지 출처: by Jacqueline Tam | <Getting It Wrong on Chronic Fatigue Syndrome> 2017.3.18
참고: <만성피로증후군의 한의학적 병태분석> 곽경구, 조정효, 손창규 | 대전대학교 한의과대학 간장혈액 내과학교실 | 대한한방내과학회지 제29권 4호(2008년 12월)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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