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안내서]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여는 글 3편: 경이로운 변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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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시간의 줄을 타고 있는 나는
찰나의 점에 불과하여라.
밤하늘을 바라보노라면
별을 품은 넓디넓은 우주
시야에 가득 차지만
그 시작과 끝은 담을 수 없어라.
시간과 우주, 스스로 그러할지니
세상, 스스로 그러할지라.

– 시간, 우주 그리고 세상 (푸샵 이종구, 2013.10.27)

어느 가을밤, 별똥별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옥상에 올라가 평상에 누웠다. 밤하늘을 응시하던 중 떠올랐던 시를 적어본다. 부족한 시 한 편 읽었으니 이제 유명한 그림 하나를 감상해보자.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 폴 고갱Paul Gauguin, 1897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 폴 고갱Paul Gauguin, 1897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그림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가? 답을 듣기 전에 먼저 설명을 하자면 이 그림은 폴 고갱의 작품으로 제목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다. 이 작품은 그가 신학교 학생이었던 10대 후반 수업 시간에 접한 교리문답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죽기 6년 전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시기에 그렸다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삶, 사랑하는 딸의 죽음, 생활고와 건강악화라는 악재까지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을 다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 삶과 죽음에 대한 물음을 그림을 통해 표현했다. 이 물음은 화가나 기독교 신자만 품는 물음이 아니다. 특정한 신앙의 여부와 관계없이 인류는 줄곧 이 질문을 품어왔다.

700만 년 전 나무 위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현지어로 ‘삶의 희망’이란 뜻의) 투마이Toumai[1] 사냥과 교미 등으로 일상을 영위하면서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조금 더 깊이 사고한 개체라면 자신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를 궁금해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이제 그림에 대한 생각이 구체적으로 잡히는가? 그림 자체는 움직일 수 없는 정적인 사물이지만 그림 속 내용은 마치 고갱의 삶이 녹아 흐르는 듯 동적이다. 삶은 정지돼 있지 않고 흐른다. 움직이는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우리는 어디선가 와서, 어디론가 향해 움직인다. 움직임과 함께 우리의 삶은 시작되고, 움직임은 삶을 관통하며, 삶은 움직임 그 자체인 동시에 우리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제 존재의 근원에 대한 고갱의 물음에서 ‘우리’를 ‘몸’으로 바꿔보자. 우리는 몸이다. 몸은 움직임이자 생명이다. 그 몸이 어디서 왔고,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신화와 예술로 최근에는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쓴 이야기를 밝혀줄 수단인 과학으로 고갱이 던진 질문을 몸을 통해 대답하려고 애써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디서부터 찾는 게 좋을까? 비록 완벽한 해답이나 끝내 해답을 찾을 수 없을지라도 우리에게 해답이 없는 질문도 필요하다. 이 드넓은 우주엔 해답이 보장된 질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들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그의 저서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통해 “생명 활동이란 몸 안과 밖이 마주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생명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순간 바로 생명의 외부, 곧 우주에 대한 질문이 시작된다.”라고 했다. 히포크라테스의 말처럼 움직임은 생명이다. ‘생명이 무엇인가?’는 ‘움직임이란 무엇인가?’로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움직임이 언제 시작됐을까에 관한 호기심은 결국 ‘우주는 어떻게 시작했는가?’로 이어진다. 신비롭게도 우리 몸을 구성하는 많은 원자들이 우주가 형성한 별의 진화에서 기원한다. 움직임 그리고 생명의 시작은 우주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 기원을 알기 위해 우주의 시작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수십억 개의 원자들이 합쳐져 사람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품고 있는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분자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1916-2004은 1981년에 출판한 그의 저서 《생명 그 자체: 40억년 전 어느 날의 우연》에서 생명의 기원을 탐구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이 서문을 남겼다.

나는 지구 생명의 기원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들의 배경이 어떤지를 간략하게 추려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라. 그 배경이란 얼마나 폭넓은가!

 

작은 원자와 분자에서부터 온 우주의 방대한 파노라마까지, 일초보다 무한히 더 짧은 찰나에 벌어진 사건들에서부터 시간의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기나긴 시간까지, 빅뱅에서부터 현재까지, 유기 고분자들의 정교한 상호작용에서부터 고등 문명과 기술의 무한한 복잡성까지.

 

다른 면에서는 절망적이기만 한 이 주제를 논하는 매력이라면, 우리가 깃들어 살고 있는 이 놀라운 우주의 다양한 측면을 모조리 알아야만 비로소 이 ‘지구 생명 기원’의 배경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 프랜시스 크릭의 《생명 그 자체: 40억년 전 어느 날의 우연》 중에서

운동안내서 어디서 왔는가 우주 1s
우주를 이루는 원자들로 이루어진 우리 [이미지 출처: Lukas Schlagenhauf, Quantamagazine.org]

우주를 이루는 원자들로 이루어진 당신과 나. 우리가 어떻게 해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별들 중 지구별에 태어나, 우리의 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규모로 움직이는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별에게는 그저 손가락 한번 튕기는 순간에 지나지 않을, 찰나의 시간 동안 여행하고 떠나는지를 생각하면 경탄과 함께 온갖 궁금증에 사로잡힌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하고….

운동 안내서: 지구별 여행자 호모 사피엔스를 위한


저서 《위대한 설계》를 통해 “왜 무無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을까? 왜 우리가 있을까? 왜 다른 법칙들이 아니라 이 특정한 법칙들이 있을까? 이 질문이야말로 생명, 우주, 만물에 관한 궁극의 질문이다.”라고 했던 스티븐 호킹 역시 죽는 순간까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2019년 4월 11일 인류 최초로 5,500만 광년이나 떨어진 블랙홀의 존재를 촬영해 온 인류가 흥분에 휩싸였다.

그러나 아무도 우주 만물의 시작과 끝을 볼 수 없을지 모르며, 영원히 가설과 상상으로만 남겨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주에 대한 가설을 여럿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 자신의 존재와 본질에 대해서는 가설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면, 아니, 그럴수록 더욱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진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얻기 위해 ‘깊은 생각’이란 슈퍼컴퓨터가 750만 년 동안 계산해 내놓은 답과 달리, 이 책이 알려줄 내용은 단순히 “42”가 아닐 것이다(구글에서 ‘the answer to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을 검색해볼 것).

지구별을 여행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인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우주법칙에 따른 것인지, 신의 주사위 놀이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인지 알 수 없다. 무엇이든 간에 기적적으로 지구별 여행 티켓을 손에 쥐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여행에 필요한 (한 번도 제대로 된 안내를 받아본 적 없는) 몸과 마음의 운동에 관한 좋은 안내서를 손에 넣는 것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움직임, 몸과 마음을 새롭게 평가하고, 매혹적인 이야기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또한 수많은 새로운 질문을 마주하며 훨씬 확장된 안목으로 운동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성공한 셈이다. 이 안내서엔 운동에 관해 새로운 것이 들어 있진 않지만, 운동을 바라보는 당신의 눈이 새로워지도록 도울 수 있길 기대한다.

나는 이 책이 건강하고, 활력 넘치게 지구별을 여행하는 약 100년 동안 당신에게 좋은 안내서가 되었으면 한다. 신기하고 놀라운 존재인 당신. 지구별에서의 여행 동안 활발하게 움직이고 운동하면서 삶의 즐거움과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 다음 연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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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몸은 어디서 왔고,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참고: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 폴 고갱(Paul Gauguin), 1897 | 네이버 지식백과
[1] 저자 주: 학술명칭은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로 2001년 프랑스 포와티에대학의 미셸 브뤼네 박사 연구팀에 의해 거의 완벽한 두개골과 턱뼈 일부, 치아 등이 발견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참고: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고미숙 지음 | 그린비(2011)
참고: 《생명 그 자체 – 40억 년 전 어느 날의 우연》 프랜시스 크릭 지음 | 김명남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2015)
참고: 《위대한 설계》 스티븐 윌리엄 호킹, 레너드 믈로디노프 지음 | 전대호 옮김 | 까치(2010)

By 푸샵 이종구: <남자들의 몸 만들기, 2004>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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